27살에 대한생명 상품개발팀에 입사했습니다.
청운의 꿈을 안고 여의도 63빌딩에서 일을 하던 시절입니다.

가장 에너지도 많았고,
가장 이 곳 저 곳 관심도 많았던 시기입니다.
그런데 20대 때 이미 사회의 쓴 맛을 알아버린 계기가 있었습니다.
저는 2005년 6월에 대한생명을 6개월 경력을 인정받고 경력직으로 입사했던 것 입니다.
6개월 경력?
지금 이 말이 이해가 안되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.
보통의 신입사원이 2005년 1월에 입사를 했다면,
저는 2005년 6월에 입사를 하면서, 1월에 입사한 신입사원들과는 다르게 경력직으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.
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.
2005년 신입사원을 선발하던 , 2004년 12월 무렵 저는 '삼성생명'과 '대한생명' 두 곳을 놓고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.
당시 업계 1위 삼성생명, 업계 2위 대한생명이었습니다.


삼성생명 최종 면접이 먼저 끝났고, 삼성생명에서 합격 연락이 먼저 왔습니다.
이 때까지 대한생명은 아직 최종면접(임원면접)을 하기 직전이었습니다.
고민을 하다가 삼성생명에서 '삼성'을 제대로 배워보자고 결심을 굳혔습니다.
당시 아버지를 포함한 주위에서도,
직장 생활을 할 것이라면
삼성을 한 번은 경험해 봐야하지 않겠냐?
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.
그래서 삼성생명 최종합격 연락을 받고,
아직 최종면접이 남아있던 대한생명에는 면접을 못 간다고 먼저 통보를 드렸습니다.
이제 2005년 1월 3일 입사일만 받고 놀면서 삼성맨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.
그러던 어느날,
대한생명에 재직중이시던 대학교 과 선배님을 통해서 대한생명 임원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.
'권상민 씨, 좋게 봤었고 기다리고 있었다고. 후에라도 인연이 되면 보자.' 이 정도의 메시지 였습니다.
그런데, 삼성생명을 입사하고서 모든게 꼬였습니다.
저희 삼성생명 2005년 입사자들이 사전에 안내받은 바와 다르게 인사배치 등 6개월간 좋지않은 상황이 연속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.
당시는 취업이 잘 되던 시기여서 아니다 싶으면 어서 탈출하는게 정답이었습니다.
저는 6개월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.
후에 들어보니 당시 저를 포함해서 2005년 삼성생명 입사동기의 30~40% 정도가 첫 해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합니다.
퇴사를 결심할 무렵 대한생명은 하반기 신입사원을 또 뽑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.
저는 보험회사의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보험상품개발을 할 수 있는 그 포지션을 너무 중요시했었습니다.
그래서 보험상품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기에 대한생명을 다시 지원한 것입니다.
제가 대한생명을 하반기 신입사원으로 지원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
위에서 저를 좋게 봐주셨다는 그 임원께서 대학교 과 선배님을 통해서 저를 한 번 보자고 하셨습니다.
바로 하시는 말씀이, 지금 하반기 신입으로 들어와서 교육받고 뭐하고 하면 또 6개월 날라가니까
경력으로 입사하고 바로 일 시작하자!
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.
배경설명이 길었습니다.
이렇게 해서 저는 2005년 6월에 그렇게 염원하던 보험회사 상품개발팀에
돌고 돌아서 '6개월 경력직으로' 입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.
그런데!
제가 6개월 경력직으로 입사했지만, 저는 신입사원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.
대한생명에서 중간 관리자분들은 저를 신입사원으로 봐주지 않으셨습니다.
간단히 말하면!
용병!
원래 대기업들은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.
토종이냐, 용병이냐
(* 용병은 돈 주고 고용하고, 불필요하면 버립니다...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.)
귀여운 우리 강아지, 이렇게 신입사원부터 입사해서 쭉쭉 크는 친구들은 토종입니다.
이유와 상관없이 중간에 끼어 들어온 직원들은 다 용병입니다.
토종의 문화가 강한 회사일수록 용병들은 적응을 잘 못하고 기존 조직에 끼어들기 어렵습니다.
참고로, 당시 대한 생명은 좀 많이 토종 문화가 쎘고, 조직 서열관리가 엄격한 회사였습니다.
제가 직접적으로 일을 하는 저희 조직의 1~2년 선배님들, 대리님, 과장님, 차장님등 몇 분은
저를 많이 아껴 주셨습니다만,
그래도 27살 당시의 제가 용병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.
문제는!
제가 실력이 없는 생짜 어린이 용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.
실력이라도 있으면 버티기라도 할 텐데,
이제 막 입사한 어린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.
저는 이 때부터 끊임없는 차별화, 남과 다른 나, 향상심, 이런 것들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.
이미 6개월 경력직을 선택한 27살부터
저는 토종 직원이라는 좋은 보호막 아래에서 성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
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을 , 몸으로 느끼고 버텨야 하는 그런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던 것입니다.
저는 그래서 주위 분들이 이직 조언을 물어보실 때마다,
토종으로서 당신이 그 조직에서 성장하고, 후에 임원이 되는 그런 메리트를 포기할 수 있겠냐고 꼭 물어봅니다.
그래도 괜찮으면 이직 하시라고.
사람들은 토종으로서 쭉 자라온 조직 아래에서 크고 있을 때에는 이곳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한지 잘 모릅니다.
오늘 유튜브 방송을 찍으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.
(20대들에게 특히) 자기계발 꼭 해야 하나요?
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고민되었습니다.
꼰대처럼 , 당연히 해야지, 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.
돌아보면, 저의 20대는 자기계발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.
난 어차피 토종이 될 수도 없고, 평범하게 순탄하게 이 조직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.
그래서 저도 살기 위해서
미국보험계리사 자격증도 공부하고 시험보고,
영국 석사 유학가고,
끊임없는 향상심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.
제가 이런 배경으로 오늘의 유튜브 방송을 이야기 했었던 것입니다.